1. 한국 판타지의 기형적인 형성
한국 판타지는 꽤나 기묘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이 ‘D&D를 기반으로 정형화된 세계관’이 마치 ‘판타지의 정석’인양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서양권에도 비슷한 ‘중세풍 배경의 검과 마법이 등장하는 판타지’는 나름대로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일본도 보통 ‘판타지’라 하면 마법사와 검사, 엘프가 마왕에게서 세계를 구하는 형식의, 로도스도 전기로 형성된 ‘전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곤 합니다.
허나, 이는 한국의 경우와는 조금 다릅니다. 서양권의 경우, ‘중세 유럽풍’의 인식은 자신들의 진짜 역사에 대한 인상을 기반으로 하고, 거기에 첨부된 환상은 자신들의 신화와 동화에서 나오는 ‘환상’에 대한 인식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는 서양 권에서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물건’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자연스럽게 창작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의 경우는 톨킨이 영국인에게 선물한 ‘대체 신화’로서, 그 역사적 기반은 가상의 고대 영국을 기반을 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익숙한 환상으로 ‘신화’로서의 성격을 부여한 것입니다. 또한 최근 주목받는 판타지 소설인 나오미 노빅의 ‘테메레르’의 경우, 그 시공간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나폴레옹 시대의 유럽’으로 한정짓고, 거기에 ‘용’이라는 환상의 요소를 더하여 이야기의 기반을 만들어냅니다.
일본의 경우, D&D 룰의 영향을 받은 로도스도 전기로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가 대중화 되었습니다만, 그 이전부터 ‘환상 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이미 깊숙이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역사를 배경으로 각종 요괴와 초인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전기 문학’이 있었으며, ‘비현실’을 그리는 또 다른 장르인 SF는 일본에서 이미 보편적인 물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 세계’를 ‘판타지 자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판타지로 만들기 좋은 하나의 툴이자 소재’라는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로도스도 전기 자체가 D&D를 다시 한 번 자기화 시킨 ‘소드월드’라는 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 세계관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당초 D&D로 진행되던 플레이(로도스도 전기는 TRPG 플레이 기록을 기반으로 쓴 소설입니다)를 굳이 새로운 룰과 세계관을 만들면서까지 대대적으로 정리한 이유 중 하나가 ‘저작권 문제로 인한 상업화의 한계’라는 점에서, 이미 그 ‘세계관’에 대한 저작권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애초에 그들은 자신들이 쓰던 ‘배경(즉 D&D)’이, 명확한 주인이 있는 남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도 ‘소드월드’ 세계에 대한 저작권 주장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란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일본은 이미 그 소재의 활용 방법을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얻은 것의 원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기에, 써도 되는 것과 써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인식이 확고했습니다. 로도스도 전기 직후 일본 판타지의 황금기를 연 슬레이어즈 또한, 자연스럽게 독자적인 세계관을 선보이고 있지요.
즉, 일본의 ‘중세풍 판타지’는 작가가 그 ‘인상’만을 인식한 후, 필요한 ‘환상’을 조합하여 하여 ‘자신만의 판타지 세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그렇기에 같은 중세풍 판타지라 하여도, 그 개개의 세계관은 작 내의 스토리와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컨셉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그 세세한 차이가 작품의 개성과 이야기의 축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세 유럽풍’을 포기하고 다양한 배경에 다양한 환상을 집어넣고, 거기서 다시 ‘활용’과 ‘구조’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도 끝에, 현재 일본 판타지(혹은 라이트노벨)계에는 매우 다양한 유형의 세계관과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의 경우를 보자면, 한국에서 초기에 판타지를 소개한 작가들은 대부분 D&D를 즐기던 사람들이었고, 당시 저작권 의식이 희미했던 상황에서,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는 그 폭발적인 성공과 더불어 무단으로 사용된 각종 D&D 설정들을 부록인 ‘용어 설명’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판타지의 정석'인양 유포합니다.
그 당시 한국의 일반적인 오락 소설인 무협의 경우, 고대 중국이라는 일관적이면서도 변화의 폭이 제한되는 확고한 배경이 있었고, 그로 인해 ‘주어진 소재를 가지고 최대한의 드라마를 이끌어 내는’ 방식의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었지요.
이 창작 법을 판타지에서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협과 마찬가지로 ‘확고한 배경’이 필요 했습니다. 그 당시 D&D는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으나 실패하였고, 드래곤 라자가 차용한 AD&D는 소개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없이, 그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약간의 D&D 번역 파일과 소드월드의 설정 등이 ‘이것이 판타지’라는 양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색깔별 드래곤의 브레스라던가 9클래스까지의 마법 목록 등이 마치 ‘진리’인양 떠돌아다니던 상황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가 ‘컨셉’을 중심으로 필요한 환상을 ‘조합’하는 조합형 환상 세계를 구축한다면, 한국에서는 ‘정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르는 ‘완성형 환상 세계’를 구축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일본은 D&D에 대한 인식이 있어, 그 이면의 신화적, 문학적 원전에 대한 연구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갈 수 있었고, 환상 문학의 저변이 존재하였기에, ‘중세 유럽풍의 세계’를 ‘하나의 소스’로 취급하였으나, 한국의 경우는 1차적 정리를 거친 독자적 저작물인 D&D와, 거기에 더해 한층 더 가공과 선택을 거친 1세대 판타지를 판타지의 원전으로 받아들여, 초기부터 그 배경적 한계를 매우 좁혀놓은 것입니다.
초기의 판타지 소설들과 그 이후 소설들의 차이점은 이 점에서 꽤나 분명히 들어납니다. ‘드래곤 라자’만 하더라도, 이영도는 D&D 설정을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기본 배경’으로만 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한 장치로서 ‘드래곤 라자’라는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여 스토리의 중심축을 새웁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다른 나라와 비슷한 ‘조합형 환상 세계’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판타지 소설들에서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어지며, 고정된 세계에서 인물과 사건에 의지한, ‘판타지로서의 매력을 포기한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이후 이영도는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D&D를 버리고 보편적 의미의 ‘중세 판타지’를 쓰는데 성공했으며, ‘새’ 시리즈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소설의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독자적 세계를 창조해내었습니다.
무엇보다 무협의 경우는 무와 협이라는 확고한 소재와, 그 기반에 깔린 동양 철학, ‘초인’에 대한 인식 등, 깊게 파고들 주제의식이 장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판타지의 경우, 이런 주제의식에 대한 인식이 없으며, 애초에 그런 것이 정해진 장르마저 아닙니다. 굳이 한국 판타지 계에서 작용한 정신 기반을 꼽아본다면 ‘현실 도피’라고 해도 좋을 경향이 나타나지요.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판타지’를 쓸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될 리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전문적 비평 인력의 부제 또한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점진적 보급에 의한 것이 아닌 일순간의 붐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판타지 시장에서, 이들을 이끌 전문가들은 적었으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만한 문학적 소양을 갖춘 자들은 당장의 오락성의 극으로 달려가는 판타지의 상황에 학을 때며 언급을 거부하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붐으로 인한 수익을 보고 달려든 몇몇 출판사들은 당장 전문적 지식이 미비했으며 그런 능력을 길러 시장을 인도하기 보다는 당장의 수익 구조를 극대화하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당장에 일본만 해도 판타지 붐 이후(그 이전에도) 각종 유명 판타지의 번역이 이루어지고, 관련 개론서와 연구서, 작법서들이 줄을 이었으며, 만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던 ‘서브 컬처’ 전문가들은 그 기본 정서를 공유하는 라이트노벨 장르에 대한 비평에도 발을 걸치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이는 창작에 뛰어든 자들을 위한 정보와 방향을 제공해 주었고, 이것은 일본에서 그 당시 중세 판타지 붐을 주도한 계층이 자본이 뒷받침되는 거대 출판사와 판타지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오타쿠층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런 형성 배경을 돌아보면, 지금 와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D&D식 설정이, 일종의 ‘무식’과 ‘성찰 부족’으로서 만들어진 기형적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양판 세계관’의 문제점과 독자적 세계관의 필요 이유
일단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흔히 ‘양판소식 세계관’이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판타지 설정, 즉 D&D의 카피 세계관이 한국 특유의 기형적 형태라는 점은 알더라도, 그것이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상황에서 굳이 바꾸려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허나, 우선 첫 번째. D&D는 명백하게 저작권이 존재하는 물건으로서 한 회사의 창작물이며, 한국에서도 이미 이 저작권 침해에 대하여 대응한 사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의 경우, 10주년 기념 양장본을 내며 D&D의 저작권을 침해한 부분을 수정했으며(허나, 아직도 문제를 재기하려면 가능한 수준입니다), D&D의 세계관 요소를 차용한(작자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D&D의 세계관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더 로그의 경우, D&D 제작사 측의 요구에 따라 2부의 집필을 중단했으며, 1부의 판매도 중단했습니다.
둘째로, 단순한 ‘중세 환상 세계’를 넘어, D&D의 설정을 보편화시킨 세계관의 경우, 일반인과의 거리가 멀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까지도 ‘판타지 입문자를 위한 추천 도서’에 ‘드래곤 라자’가 항시 언급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하게 명작일 뿐만 아니라, ‘처음 판타지를 읽는 사람에게 친절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드래곤 라자 내의 독자적인 세계관의 요소들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주어지고, 더불어 부록으로 제공된 ‘용어 설명’은 작 중 사용된 D&D의 용어들을 설명해줍니다.
이것으로 그것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독자들은, 그 이후 지속적인 독서와 인터넷 상에 떠도는 설정을 찾아보며, ‘D&D 세계관’에 대한 지식을 일반화 시킵니다.
같은 설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니, 이제 책 내에서 ‘알고 있는 지식’이 상세히 해설 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 느끼게 되고, 이것은 독자층이 그대로 작가 층이 되는 한국 판타지의 경우, 책에도 그대로 반영되게 됩니다.
그리하여, 판타지 소설 대다수는 ‘지속적으로 판타지를 읽어온 계층’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물건이 되어가고, 결국에는 신입 독자층의 유입을 막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판타지 소설의 기본적인 정서인 ‘경이감’과 ‘환상에 대한 동경’은 그것을 자주 접하고, 구체적인 데이터로서 파악되는 순간 그 매력을 잃게 됩니다. 그와 동반되는 ‘전반적인 질적 하락’은 직접적인 독자층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셋째로,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세계관’이 가지는 의의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조합형 세계관’에서, 작자는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이야기의 중요 점을 최대한 강조하기 위해서 그 세계의 구조 자체를 개변하며, 그 영향을 고려,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소설의 세계관은 그 소설의 이야기에 맞물려 개성적인 매력을 발산할 수 있으며, 그 자체적으로 그 소설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고,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허나, 완성형 세계관의 경우는 이미 그 ‘배경적 기반’이 고정되어 있기에, 작자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요소요소가 결합하여 완성되어 있는 그 결과물 자체가 너무나 견고하기에, 거기에 작자의 요소가 들어가는 순간, 그 견교한 조합의 균형이 일그러지게 되고, 그것은 그대로 작중의 설정 모순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독자가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D&D 설정’에 반하는 설정이 나타나면 그 글은 그것이 판타지라 믿고 있는 독자들에게 외면 받게 됩니다. “그 작가는 제대로 판타지 설정을 공부하지 않았다”라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이지요.
또, 상상력이 허용하는 한 무한히 뻗어나가며, 그에 따라 얼마든지 창조와 변화가 가능한 조합형 세계와 달리, 정해진 배경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의 경우, ‘소재의 활용도’와 ‘이야기 전개의 폭’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나 버립니다. 세계관 자체의 구조에서 주제의식을 담을 수 있는 조합형 세계관과는 달리, 정해진 배경 내에서 인간관계와 사건의 진행만으로 표현해야 하는 완성형 세계관은 효율성과 표현력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하나의 주제의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강렬한 컨셉에서 창조된 세계관이 주는 인상과, 단지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세계관은 그 매력과 존재감이 차원을 달리하며, 소설의 진행 자체에도 크게 작용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위해서 그 이야기의 매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세계관을 선택하고 그를 위한 설정을 만드는 것은 이야기를 쓰는 것에 있어 원래 기본이 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야환담’은 바로 우리 옆에 있는 광기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어둠의 상징인 흡혈귀들과 광기에 사로잡힌 헌터들의 피 튀기는 싸움을 써냈습니다.
‘양판소 세계관’을 사용하더라도 재미있기만 하면 된다. 전부 작가의 필력 문제이다. 라는 말이 어느덧 일반화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의 예시로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열왕대전기’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 폐해를 제대로 고려치 않고, ‘당장에 읽기에 좋은 물건이 나왔다’라는 결과론 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품을 쓰는 작가는 어쨌거나 최상의 작품을 목표로 노력해야 하며, 여기에서 ‘편한 길’을 선택한 것은 잘못으로 지적되어야 하며, 이런 행위가 ‘판타지가 가장 쉽게 취할 수 있는 매력’을 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확고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잠시 ‘게임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
‘게임 판타지’라는 물건은 가뜩이나 얕은 장르적 인식 위에 새워진, ‘발상’ 말고는 볼 것이 없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성찰 없이 제대로 이해되는 작품이 쓰여 질 리가 없으며, 그렇기에 그 ‘얕은 인식’을 허용할 수 있는 층과, 허용 할 수 없는 층의 격심한 대립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논쟁에서 ‘어차피 오락거리를 뭣 하러 그리 진지하게 따져드느냐’는 말이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들리는 것은, ‘판타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자체가 ‘깊이 없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전재가 깔리기 때문이며, ‘제대로 된 인식 하에 쓰인 작품들’에 대한 정보가 적기 때문입니다. ‘가상현실’라는 소재가 어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애초에 ‘새로운 소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 자체가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에서는 고려할 대상조차 아닌 것입니다.
다른 소재들은 작가의 경험이 축적되며 그나마 ‘감’을 잡을 수 있으나, 직접적인 ‘과학’의 개입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연구와 세심한 접근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8,90년대 사이버펑크에서 이미 만들어진 테크닉과 수없이 시도된 접근 방법조차 SF 자체에 대한 인식이 적은 한국에서는 무시당하고 있는 형편이며, 이것은 게임 판타지를 비난하는 측도 별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 그야말로 영양가 없는 말싸움밖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입니다.
4. 예외
물론 전형적 세계관이 작품의 이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형적 세계관’ 자체가 필요한 이야기, ‘판타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이렇다면 재밌을 텐데’라는 전형적이 ‘팬픽’적 심리가 들어간 이야기, 혹은 장르 그 자체에 대한 패러디 혹은 메타픽션 성향의 이야기를 쓸 때입니다.
여기에 잘 들어맞는 것이 바로 ‘차원이동’ 혹은 융합, 즉 ‘퓨전 판타지’라 불리는 물건들이며, 이 경우 ‘판타지와 XX가 합쳐진다면’이라는 ‘발상’ 그 자체가 기반인 만큼, 저 ‘판타지’에 들어갈 물건은 현 판타지 계의 가장 일반적인 경향일 필요가 있습니다.
허나,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그 발상 자체의 신선함과, 그에 따른 영향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에 재미를 의존하며, 그것에 더 나아가 그 자체로서 매력 있는 이야기를 써내기 위해서는 다시금 ‘이야기를 위한 세계’를 짜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의 신선함은 이미 사라졌고, 그 발상은 이미 일반적인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의 경우, 사이케델리아로 ‘이세계에 넘어간 고등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태동하였고, 그 이후 긴 시간이 지나며 이것 자체가 ‘클리셰’가 되어, 일명 이 ‘이고깽’ 자체를 적으로 설정한 ‘더 세컨드’ 등의 ‘퓨전 판타지’에 대한 패러디 요소가 들어간 작품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만, ‘차원 이동’을 순수하게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하고, 그에 더 나아가 능수능란한 ‘하나의 세계관’을 들어내는 작품(또다시 일본의 예시를 들자면 ‘십이국기’)은 보기 드문 현실입니다. 의외로 가장 초기의 작품인 ‘사이케델리아’에서는 이런 시도가 약간이나마 보이곤 합니다.
5.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형적 형성 이후 그럭저럭 내부 담론이 형성되어 가면서도 이 세태가 바뀌지 않는 이유를 찾아보자면, 대여점 유통 체계 하에서의 너무나도 빠른 소비속도와, 전문 층과 일반 독자층의 괴리, 그리고 장르 자체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 제공원의 부제 등이 있습니다.
대여점 체제 하에서 하루에도 여러 권씩 쏟아지는 책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한권 한권에 들일 시간과 신경은 적은 편이 좋습니다. 그렇기에 하나의 책의 세계관을 파악하고, 그 다음권이 나올 때까지 연구하거나, 기억해야만 하는 요소는 없는 것이 편합니다.
또한 판타지의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을 알려줄 개론서등이 적으며, 그나마 있는 것들도 익숙지 않은 영미권 판타지 등에 대하여 다루지, 그것에 대한 지식이 미천한 일반 층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류의 정보는 적으며, 이미 한국 판타지의 일반적인 경향 자체가 그런 류의 것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방향으로 발전했기에 직접적으로 적용시키기도 어렵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쓴 그런 책들은 한국 판타지의 근원적 기형을 지적하지 못하며, 그렇기에 일반 독자들에게 그 기초적 인식을 바꾸어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6.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이런 상황의 변화를 주기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라이트노벨의 수입과, 대여점의 쇠퇴입니다.
대여점의 쇠퇴는 판타지계 전반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독자층은 그 원인을, 출판사는 그 대책을 찾기 시작합니다.
원인이야 전반적인 질의 하락으로 인한 독자 감소와, 붐의 쇠퇴로 인한, 어느덧 ‘읽는 사람만 읽는 것’으로 돌아와 버린 판타지계, 그리고 다양한 오락거리와 스캔 본으로 인한 대여점 자체의 감소에 따른 판매량 감소 등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출판계와 팬덤 일부가 주목한 것이, 몇 년 전부터 활발히 수입되고 있던 라이트노벨입니다. 라이트노벨은 유통 단계에서 대여점 반입을 차단하고, 활발하게 구입 층을 포섭한 덕에 어느덧 확고한 시장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그 작품들 또한 기존 한국의 기형적 구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주제의식, 다양한 매력을 제공해 주었으며, ‘일본 내의 성공’이라는 여과 장치는 전반적인 소설의 질 자체를 보장해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대여점 쇠퇴에 주목한 자들은 ‘팔려면 확실하게 뛰어난 질의 작품을 내어야 한다’는 것을 기조로, 넥스비젼, 노블레스 클럽 등 확실한 ‘판매 목적의 소설’을 내기 시작했으며, 라이트노벨에 주목한 자들은 시드노벨을 만들어 냅니다.
제대로 된 인식을 일반에 심어줄 수는 없었으나, 고급화 전략은 그 속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작가’를 포섭했고, 한국 내부에서 시도되는 라이트 노벨은 ‘창작 방법의 강제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7. 마치며
이상 ‘양판 세계관’은 어떻게 한국에 자리를 잡았고, 그것이 포함한 문제점과 독자적 세계관이 소설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 또한 한국 판타지계의 새로운 변화 시도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포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개인의 주관적 의견이 얼마나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며,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허나, 변화의 급물결을 타고 있는 현 한국 판타지 시장에서, 그 근원에 깔린 문제를 직시하는 것은 위기 타개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일 것이며, 작가와 독자 자신이 그에 대한 인식을 쌓는 것은 장르 자체의 성숙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이 글이 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논의를 제공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과 함께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그란덴 2009/05/13 00:35 # 답글
판갤에 썻던 말대로 좀 [당연한 사실에 대한 고찰이 많은것 같긴 함]팬터지라는게 사실 [비정형된 세계속에 자기 편할대로 이야기를 풀기 위한]도구로써 정립되는게 좋은데 마치 드래곤볼 마냥 무슨 전투력 수치재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소드마스터와 마법클래스에 이골이 나는건 뭐 당연한거 -_-;;
근데 일단 독자창구가 1번적으로 대여점이란것도 슬프긴 슬프군요.
덧, 겜판은 장르적으로 논할 가치가 없다는게 개인적인 견해, 이건 팬터지를 정말 조악하게 비틀어버린 것임. 장르라기 보다는 변종에 아류일뿐인것, 만약에 온라인게임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기에 더더욱 장르소설쪽의 이야기에 끼워넣기 힘들다고 봄
셸먼 2009/05/13 00:44 #
그렇다고 해서 겜판이 '이야기적으로 재미없는 물건'밖에 나올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SF쪽을 찾아보면 가상현실 게임을 다루면서도 그것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 꺼리나 주제의식을 뽑아낸 것들이 있고, 단순한 '활극'의 배경 변용으로서도 각종 재미 요소를 주기도 합니다.다만, 그것이 장르적 수준으로 논해지려면 필요한 '담론' 자체를 생성하는 것 부터가 한국 게임 소설계에서는 잘 안되지요 ㄱ-;;
17호 2009/05/13 01:04 # 답글
셸먼씨 군대갈대가 다 된듯...
셸먼 2009/05/13 01:16 #
헐퀴, 아직 반념 넘게 남았음.
주둥이 2009/05/13 01:07 # 답글
칼럼 잘 읽었습니다. 기존 지식들을 머리 속에서 차분히 정리하는 느낌이네요.어떤 작품이 촉매제가 되어 한국 장르계를 부흥시킨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같은 상상을 해봅니다. 한국 사람 특유의 냄비 근성만 믿고 갑니다-_-)b
달걀폭풍 2009/05/13 01:07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
JOSH 2009/05/13 01:23 # 답글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였죠.'설정만 열심히 써 놓고 작품 완성도 못하는 놈들은 할 말이 없다'면서
양판소 옹호를 하는거 보니 착잡해지더군요.
위래 2009/05/13 18:24 # 답글
멋진 정리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읽다가 생각난 것인데, 이런 적이 있었지요.친구가 소설을 보고있기에 표지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대여점 스티커가 붙은 양판소였는데, 재미있냐고 물어보니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다가, 한번은 책장을 훑다가 '나이트 워치(루키야넨코꺼요)'를 보여주면 어떨까 싶어 빌려주려고 학교에 가져갔습니다. "볼래?" 하니, 어떤건데, 하길래 "판타지" 라고하니, 다음에 볼께, 하더라고요. "판타지 좋아하잖아," 하니, "그거랑 그거랑 좀 다르잖아" 라고 하더군요. 싫다는데 어쩌겠냐 싶어서 관두었죠.
대여점 독자가 생각하는 '판타지 소설'이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위 칼럼에도 잘 이야기 되어있지요. 아쉬운 점은 명확한 해결방식이 제시되어 있지 않는 점이 아쉽네요. 물론 이러한 칼럼자체가 그러한 시도이겠지만서도…… 여러모로 강구해볼 점이네요.
2009/05/30 12:28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머루머루 2009/07/13 19:27 # 삭제 답글
군대에서 글 쓰는 1人.양판소는 조폭 코미디 영화나 대본소 소설과 비슷하다능. 그때그때의 사회 분위기와 인상을 캐치 해서, "아!" 하고 공감할만한 타임킬러을 만들어내는 것이 양판소 시장이랄까. 어떤 영화의 캐치프레이즈가 생각나네. -> "누구도 기대 안 했지만 우리는 만들었다! 투!" 시시하지만 저런 재치가 바로 양판소가 계속해서 살아남는 묘미겠지.
한국적 세계관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건 분명한데, 여기에도 흐름과 대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능.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비양판계" 작가들도 대중에게 좀 더 아양을 떨줄 알아야한다는 거야.
비양판계로만 글을 쓰려는 작가들이 시도하는 "흐름의 이해"는, 결국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의 발굴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양판소를 무조건 부정하는 건, 아니, 적어도 그 독자들의 취향을 부정하는 건 "양판계"과 "비양판계"의 분열만을 가져온다고 생각해. 그런데 궁극적인 해결 방안은 두 가지를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보거든.
한국 시장에서 해결의 실마리는 역시나 "닌텐도 코리아" 같은 전략이랄까. 약간 다른 시장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게임에도 관심이 깊어서, 처음에 닌코 설립된다고 했을 때 NDS~Wii의 인기는 시들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들은 "게임하지 않는 사람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아서 성공했잖아.
한국의 비양판 작가들도, "양판소 배척"이 아니라 "양판소 수용"의 자세를 가지고 시장의 흐름에 구체적으로 뛰어드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면, 비양판계도 물질적인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동맹"이나 "조력자"를 늘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예를 들자면, 스스로 해당 문화를 치켜세우는 파우스트 같은 관련 잡지나 미디어적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쪽은 너무 매니아 취향이라서, 좀 더 대중과 친화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로;
레이프미 2009/11/05 15:39 # 삭제 답글
이 긴글을 다 읽어보네...공감 ㅋ